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빈 회의 (문단 편집) == 회의 결과에 따른 각국의 손익과 후일담 == [[파일:attachment/Map-1810_and_1817-After_Congress_of_Vienna.jpg]] {{{-1 Grand Duchy of Warsaw은 [[바르샤바 공국|바르샤바 대공국]]이다.}}} [[파일:Europe_1815_map_en.png]] {{{-1 1815년 유럽}}} 이는 빈 회의 만의 독자적인 결과가 아니라 이전 프랑스와 나폴레옹 전쟁 때의 합의된 국경선도 참조했다. 나폴레옹에 빌붙어서 영토를 확장한 중소규모의 영방들의 기득권도 인정되었다. * [[부르봉 왕정복고|프랑스 왕국]] 1790년 1월 1일의 국경으로 복귀했다. 원래는 1814년 프랑스 전역에서 4개 승전국들이 합의한 대로 1792년 1월 1일의 국경선이었으나 백일천하 후에 조금 더 가혹해져서 [[프로이센 왕국]]에 [[자를란트]] 할양을 포함하여, [[스위스]], [[네덜란드]]에도 추가로 영토를 할양해야 했다. 훗날 [[이탈리아 통일|이탈리아의 통일]]과정에서 얻은 니차(Nizza)[* 현 프랑스 [[니스]]]와 [[사부아|사보이아]]를 제외하고 현재의 국경과 거의 비슷해졌다. [[루이 18세]]의 복위를 통한 [[부르봉 왕조]]로의 [[왕정복고]], 영국이 점령한 대다수의 --얼마 남은 것도 없지만-- 식민지를 반환(재획득) 받음과 동시에 [[세네갈]]을 얻었고, [[입헌군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전범국으로 찍혀서 영토내 주요 요새를 외국 군대에 점령당해야 했으며 3 ~ 5년간 외국 군대 50만 명의 체류비와 7억 프랑의 전쟁 보상금을 지급하고 각국이 프랑스를 감시하기로 한다. 영토 면에선 비교적 관대했지만 외교적으로는 꽤나 가혹한 조치였다. 부르봉 왕조가 복귀하고나서도 유럽 각국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프랑스로부터 [[몰타]] 섬, 네덜란드로부터 [[실론]] 섬[* 오늘날의 [[스리랑카]]]과 [[케이프타운|케이프 식민지]][* 후의 [[남아프리카 공화국]]]를 획득했다. 나폴레옹 전쟁 와중 점령한 [[이오니아]] 제도에는 이오니아 제도 합중국을 세워 보호국으로 삼았다. [[독일 연방]] 소속의 하노버 선제후국은 [[하노버 왕국]]으로 격상시킨 후 영국 [[하노버 왕조]]와 [[동군연합]]을 이루었다. 영국 하노버 왕가의 본가인 [[벨프 가문]]의 방계인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텐 가문은 완전히 분가하여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으로 분리되었다.[* [[하노버 왕조]]는 원래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가문으로 [[벨프 가문]]의 직계인데 수도를 뤼네부르크에서 [[하노버]]로 [[천도]]하고 [[선제후]] 가문이 되고나선 하노버 가문으로 불렸다.] * [[오스트리아 제국]] 부유하지만 지리적으로 너무 멀리있던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는[* 현재의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네덜란드]]에 넘겼다. 월경지라 관리하기 곤란했던 [[신성 로마 제국]] 시절 서남부의 [[월경지]] 외지오스트리아(Vorderösterreich) 역시 [[바덴 대공국]], [[뷔르템베르크 왕국]]에게 싹 다 넘기고 제3차 [[폴란드 분할]] 때 얻은 신갈리치아는 러시아에게 넘겼다. 대신 [[롬바르디아]]와 [[베네토]]를 얻어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을 만들면서 [[이탈리아 반도]]에서 실리를 챙겼다. 이탈리아 중북부의 [[토스카나 대공국]]과 [[모데나 레조 공국]] 등 [[합스부르크 가문|합스부르크 왕조]]의 방계가 북이탈리아 지역에 다시 복귀하여 위성국이 되었으므로 사실상 [[사르데냐 왕국|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을 제외한 북이탈리아 전역이 합스부르크 왕조의 영향권이 되었다. * [[러시아 제국]] 러시아 황제가 대공을 겸하는 [[핀란드 대공국]]을 승인받고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베사라비아]]를 얻었으며,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로부터 신동프로이센과 신갈리치아를 넘겨받았다. 즉 핀란드, 폴란드와 [[프루트 강]] 동부 [[몰다비아 공국]] 영토를 획득했다. 핀란드는 나폴레옹이 러시아에 친영파였던 스웨덴을 응징하기 위해 꼬셔서 일으킨 1809년 스웨덴과의 전쟁으로 얻은 것이므로 실제로 큰 이득을 본 것은 없다. 오스만 제국령도 나폴레옹 전쟁 때 틈틈이 털어서 자력으로 획득한 것이고 폴란드는 [[폴란드 분할]]후 러시아 영역이 가장 컸다. 프로이센 왕국에 [[바르샤바]] 등을 양보받았기 때문에 프로이센 왕국 편을 들었다. * [[프로이센 왕국]] 바르샤바를 포함한 신동프로이센과 포젠의 일부를 러시아에게, 동프리슬란트는 [[하노버 왕국]]에, 남독일의 [[바이로이트]]와 [[안스바흐]]는 [[바이에른 왕국]]에 양도하는 등 일부 지역을 포기하였으나, [[작센 왕국]]의 북부, 스웨덴령 [[포메른]], [[라인란트]], [[베스트팔렌]], [[단치히]], [[포젠]]을 얻었다. 원래는 포젠까지 러시아에게 양보하고 그 댓가로 작센 왕국의 완전한 합병을 요구했으나 오스트리아 제국을 비롯한 타국의 견제로 작센의 60% 정도만 합병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때문에 오스트리아 제국과 전쟁 직전까지 갔다.[* 단순히 메테르니히와 탈레랑이 프로이센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러시아 제국 때문이었다. 영국은 폴란드 전체를 합병한 러시아가 지나치게 강력해져 서유럽으로 팽창하는 것을 결사 반대하였고 오스트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탈레랑이 영국-오스트리아 편을 들어 삼국은 만일 러시아와 프로이센이 양보를 하지 않으면 전쟁을 선포한다는 내용의 비밀 조약까지 맺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알렉산드르 1세가 한발 양보하여 폴란드 전역을 합병하지 않고 프로이센 왕국과 나누는 선에서 타협하며 실마리가 풀렸다.] 프로이센의 입장에서 라인란트와 베스트팔렌은 [[프랑스 제1제국]]치하 [[라인 동맹]]이라는 체제로 너무 오래 있어서 '''혁명으로 오염된 지역'''이었던 데다가[* 초창기 라인란트의 사람들은 프랑스의 지배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프랑스 혁명 정부가 봉건 질서를 해체하면서 자유주의자들에게 호의를 얻었기 때문인데, 호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당시 자유주의자들과 젊은 지식인들에게 민족주의가 퍼지면서 압제자로 인식되었고 나폴레옹시대 프랑스 본토도 세금과 징병으로 쥐어짜이다 못해 들고 일어났는데 합병된 독일 영토야 뭐.] 본토와 지리적으로도 분리되어서 별로 탐탁지 않았고, 거기다 특히 라인란트는 종교적으로 [[가톨릭]]이 주류인 지역이라 [[개신교]]가 중심이었던 프로이센 입장에서 좋다고는 얘기할 수 없었지만, 유럽 내에서 프랑스를 견제할 역할로 프로이센 왕국이 지명됐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여차저차 획득하게 됐다. 메테르니히는 대륙에서 프랑스의 견제자 역할을 포기하며 프로이센 왕국에게 그 역할을 떠 맡겼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오스트리아가 훗날 [[독일 연방]]의 주도권을 잃게 되었다. 앞서 폴란드에서 러시아가 영국과의 충돌을 꺼리며 폴란드 영토를 일부 양보하고 메테르니히의 바람대로 작센을 프로이센에 완전 합병이 아닌 절반 규모로 존속하며 타협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지역은 프로이센 왕국에게 잭팟을 안겨주었는데 [[산업 혁명]]의 원동력인 [[철광석]]과 [[석탄]]이 풍부하고 [[라인강]]을 이용한 수운이 발달하였기 때문에 슐레지엔과 더불어 독일의 공업화를 이끄는 최선두 지역이 되었고 그 결과 프로이센의 국력이 폭풍 성장, 추후 프로이센 왕국이 [[독일 통일]]의 주역으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 [[덴마크]]로부터 [[노르웨이]]를 얻은 대신 노르웨이의 영토인 [[페로 제도]]와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영토로 잔존했다. 스웨덴령 포메른은 프로이센에게 양보했다.[* 정확하게는 스웨덴이 노르웨이를 얻는 조건으로 스웨덴령 포메른을 덴마크에게 양도했고, 덴마크는 이를 원래 프로이센이 차지할 예정이었던 라우엔부르크 공국과 교환했다. 덴마크 입장에서 덴마크 본토와 따로 떨어진 월경지인 스웨덴령 포메른 대신 본토(정확하게는 동군연합인 홀슈타인 공국)와 바로 접한 라우엔부르크를 가지는게 더 나았기 때문.] * [[연합 네덜란드 주권공국]] 오스트리아 제국으로부터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를 획득하며, [[오라녀나사우 왕조|오라녀나사우 가문]]이 정식으로 통일 네덜란드의 왕위에 올랐다. 독일 연방 안에 있던 오라녀나사우 공국을 프로이센한테 넘기는 대신 독일 연방 안의 룩셈부르크 공국을 대공국으로 승격시켜 [[네덜란드 국왕]]이 [[룩셈부르크 대공]]을 겸했다. 이 결과 네덜란드 왕이 룩셈베르크 대공 자격으로 독일 연방의 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15년 후 벨기에는 종교적 문제와 겹쳐서 [[벨기에 혁명|독립전쟁]]으로 인해 분리되고, 50여 년 후에는 [[살리카법]]으로 인해 룩셈부르크도 분리되었다. * [[사르데냐 왕국]] 원래 왕국의 영토였다가 나폴레옹에게 합병당한 [[피에몬테]], [[발레다오스타]], [[니스|니차]], [[사부아|사보이아]] 등 본토를 되찾았고 새로이 [[제노바]]를 위시로 한 [[리구리아]] 지방을 얻었다. 왕국의 이름을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Regno di Sardegna-Piemonte)으로 바꾸었고 이 영토들은 훗날 사르데냐 왕국이 [[이탈리아 통일]]을 이루는 기반이 된다. * [[스위스]] 프랑스 혁명 이전처럼 독립국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영세중립국]]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비엔(Bienne)과 바젤 주교령을 얻었다. 대신 발키아벤나(Valchiavenna) 지역[* 현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손드리오도 일대. [[그라우뷘덴]] 주의 전신인 삼동맹이 [[밀라노 공국]]에게서 점령한 지역이다.]을 오스트리아 제국에게 할양했다. * [[스페인]]과 [[나폴리 왕국]]-[[시칠리아 왕국]] [[보르본 왕조]]로 왕정이 복고되었다. 보르본 왕조의 방계가 [[동군연합]]으로 다스리던 나폴리 왕국과 시칠리아 왕국은 정식으로 한 나라로 통합해 [[양시칠리아 왕국]]이 출범하였다. 그러나 스페인은 비준을 1817년까지 거부했는데 예전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털러가면서 영토할양을 했고 이탈리아에 방계 왕족의 영지를 확보해준다는 조건을 강대국들이 무시해서였다. 결국엔 스페인 왕가 방계인 부르봉-파르마 가문이 루카를 받는 것으로 합의했다. * [[작센 왕국]]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가 덴마크처럼 정신 못차리고[* 프로이센을 견제하는 역할로 프랑스에서 이권을 많이 받았는데 바르샤바 대공국 대공도 겸임했다. 라이프치히 전투 후에 포로로 잡히고 왕위 복귀가 유보 되었으나 복위는 승인 받았다.] 끝까지 나폴레옹 편을 든 대가로 국토의 60% 가까이가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당했다. 작센은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전범취급을 당해서 공식 초청도 안되었고 발언권도 허락되지 않았으며, 참관인을 고용해서 간접적으로 청취만 해야 했다. 하지만 완전 병합은 영불오 삼국동맹의 견제로 못하게 되고 "독일 연방의 작센 왕국"으로 존속하는데 성공했다. 같은 [[베틴 가문]]의 본가 에른스트 계열의 작센 공국들에게 일부 영토를 할양했다. 이는 1547년 [[슈말칼덴 전쟁]]으로 벌어진 비텐베르크의 항복(Wittenberger Kapitulation)[*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에게 패한 에른스트계의 작센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 1세]]가 6촌인 작센-마이센 공작 [[모리츠(작센)|모리츠]]에게 영토 일부를 할양하고 [[선제후]] 작위를 넘겨준 사건을 말한다.] 때 알브레히트 계열이 같은 베틴 가문의 본가인 에른스트 계열로부터 찬탈한 영토의 일부. * [[하노버 선제후국|하노버 왕국]] 영국과 동군연합 관계인 선제후국이 복구됨과 동시에 왕국으로 격상되었다. 덴마크에 라우엔부르크 공국을 넘기는 대신 뮌스터 주교령을 얻고 프로이센으로부터 동프리슬란트를 양도받았다. * 나머지 [[독일 연방|독일]] 지역 라인 동맹에 속했던 나머지 독일 지역은 나폴레옹 시대 이전으로 돌리기엔 소국들이 많아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라인강 유역의 3개 대주교구[* [[마인츠 선제후국]] · [[트리어 선제후국]] · [[쾰른 선제후국]]]은 소멸했고, 나머지 교회령이나 제국 직속도시 제국기사령, 기타 영방소국들은 오스트리아 제국이나 기타 나머지 독일 국가에 합병되었다.[* 합병되어 없어진 소국의 왕가들은 이전과 똑같은 결혼에서의 특권이 주어졌다. 즉, [[귀천상혼]]에서 제외되어 다른 왕가와 혼인이 계속 가능했다.] 하노버, 뷔르템베르크, 바이에른은 왕국으로 격상했다. 앞서 몰수한 교회령은 각국이 합병한 것을 그대로 인정받았는데[* [[교황청]]에서 성직제후령의 복귀를 강하게 주장했으나 아무도 듣지 않았다.] 유서 깊은 제국도시들, [[레겐스부르크]]나 [[뉘른베르크]] 등도 모조리 합병되었고 [[프랑크푸르트암마인]]과 [[뤼베크]], [[브레멘]], [[함부르크]] 4개만 독립을 인정 받았다. 이런 듣보잡 소국들을 나눠먹은 최대 수혜자는 [[바덴 대공국]]으로, 혁명 이전보다 영토가 5배나 증가할 정도 였다고[* 바덴 대공국은 앞서 나폴레옹에 줄을 잘서서 받은 영토 기득권을 그대로 인정받았는데 라인강 이서 지역을 프랑스에 조공으로 바치는 대신 라인 강 동편에 8배에 달하는 대토보상(?)을 받았다. 여기엔 오스트리아 제국의 외지오스트리아도 있었다.]한다. 1648년 [[30년 전쟁]]과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300여 개가 넘는 독일의 독립 연방들은 이미 나폴레옹 덕에(?) 많이 정리되었고, 1806년 해체된 [[신성 로마 제국]]을 대체하는 [[독일 연방]]이 1815년 결성될 때는 35여개 국가(+ 4개의 자유시)로 정리되어 나름 [[독일 통일]]을 앞당겼다고 할 수 있다. [각주] [[분류:1814년/사건사고]][[분류:1815년/사건사고]][[분류:나폴레옹 전쟁]][[분류:회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